[특별기고] 명절이면 생각나는 고향과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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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명절이면 생각나는 고향과 부모님
  • 입력 : 2023. 01.19(목) 09:23
전.광주광역시교육연수원 총무부장 윤은상
명절에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고향에 그리운 부모님과 옛 친구, 눈 덮인 산야와 포근한 바다, 양지 바른 뒷동산과 따뜻한 온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곳 고향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뼈가 자란 곳, 아직도 동백꽃이 피어 있는 나의 고향 해남입니다.

지금은 옛 친구도, 초가집도, 마을 앞 우물도, 소 몰고 가던 길도 없어지고, 유년시절의 흔적이 송두리 채 사라졌다 하더라도 고향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으로 다정다감한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고향이란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운명 같은 곳이며 어머니의 품속 같은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그런 고향이 있기에 매년 명절 때마다 홍역을 치루 듯 어김없이 그 머나먼 길을 마다하고 즐거움과 설렘으로 다녀갑니다.

고향에 내려가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면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떠날 때에 변함없이 고추, 마늘, 참깨, 콩 등 정성이 담긴 곡식을 넉넉히 담아 주시며 마을 앞 회관까지 나오셔서 배웅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젠 계시지 않아 고향땅에 발걸음이 점점 멀어진다 할지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고향과 어머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베이비붐 시대의 우리의 어머니는 비록 배우지 못했으나 남편에 대한 절대적 순종, 가족과 자녀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운명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오셨습니다.

호미 한 자루에 운명을 걸고 모진 농사일과 자녀 양육, 시부모 봉양, 가사 일을 도맡아 희생만 하셨던 우리 시대의 어머니, 그런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들이 훌륭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하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정말로 뛰어 넘기 어려운 선진국의 높은 벽을 이미 뛰어 넘어 세계 7대 무역 강국,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거나 늙고 병들어 자녀들의 보살핌과 효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는 주민들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이미 돌아가셨거나 보통 80-90세의 고령이 대부분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고향을 일찍 떠난 경우 자녀들이 더 이상 고향을 찾지 않거나 부모가 있다하더라도 교통 혼잡으로 부모님이 귀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고향땅을 결코 잊을 수는 없습니다. 자녀들을 무척 사랑하셨지만 표현하지 않으셨고 잘못이 있을 때에는 가차 없이 회초리를 잡으시고,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염치와 예절, 그리고 가문의 뿌리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체취가 느껴집니다.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명절마다 항상 고향에 내려와 함께 모여 오순도순 얘기하며 형제간에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너희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항상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아버님 생전의 말씀을 기억하며 지금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지만 명절이면 부모님이 남겨 주셨던 고향집에서 형제가 만납니다. 함께 성묘하고 음식을 나눈 후에 집안 어른께 세배와 문안을 드립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만 형제간이란 말이 있듯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간에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오히려 재산 배분 문제로 부모님과 형제끼리 서로 갈등하며 남보다 더 멀리하는 형제도 적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 소홀하기 쉬운 형제간의 우애를 끓임 없이 연결해 주고 있는 고향, 그런 고향을 찾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것이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이며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부모님의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드립니다.

우리 마을의 인근에는 ‘해남윤씨 녹우당’과 고산이 머무르면서 산중신곡을 썼던 ‘금쇄동’과 ‘대흥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진만의 해안선을 따라가면 ‘가우도 출렁다리’와 정약용의 유배지로 알려진 ‘다산초당’도 가깝습니다. 어릴 때 추억이 깃든 마을앞 바다는 간척사업으로 사라지고 저수지와 넓은 농토로 변해 출렁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집 이제는 부모님도 모두 떠나고 빈집으로 남아 있으나 가끔 내려가 머무르면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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