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칼럼] 삼전도와 을사늑약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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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칼럼] 삼전도와 을사늑약의 흔적들
  • 입력 : 2020. 12.11(금) 10:20
오 수 열(광주유학대학·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추워져 가는 날씨 속에 코로나19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2단계가, 우리 지역에서는 강화된 1.5단계가 발령되었음에도 확진자 수는 연일 600명 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는 높아져만 가고 사회적 안전망은 곳곳에서 허점이 노출 되고 있다.

선진 국가들은 안정성이 검증된 백신을 구매하는데 재정역량을 총동원하였고, 영국은 이미 접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4000만 명분이 넘는 백신 구매를 완료하였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늦어도 내년 언젠가는 나에게도 접종의 기회가 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려고 한다.

희망, 참으로 좋은 말이다. 만약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日常)은 얼마나 답답하고 암울할까? 그런데 정작 정치(政治)에만 시선을 돌리면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짜증과 함께 불안(不安)이 엄습해 온다.

우연히 켠 TV에서 인조(仁祖)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태종(淸太宗)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에서 10만 청군의 공격에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가 결국 항복하게 되자 청태종이 삼전도(지금의 송파)에 수항단(受降檀)을 지었고 여기에서 인조가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나라의 국왕이 처할 수밖에 없는 비참함과 청에 끌려갔던 수많은 인질녀(人質女)들이 훗날 귀환 하면서 환향녀(還鄕女)가 ‘화냥년’으로 내몰리게 된 처절했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얼마 전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우리나라를 다녀갔고, 뒤이어 미국의 비건 국무부 부장관겸 대북특사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미국에서의 행정부 교체에 따른 대외정책의 변화에 맞추어 한국을 자국의 세력권 하에 묶어 두려는 포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왕이는 노련한 외교관이다. 대학에서부터 외국어를 전공하였고 졸업 후 외교부 근무를 시작하여 경력을 쌓아 2004년 주일대사에 임명되었고, 2007년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으며 2013년 이래 외교부장을 맡고 있는 전형적인 직업외교관이다.

2박 3일에 걸친 그의 방한을 두고도 후일담이 무성하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면담하였고 여권의 실세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도 한다. 한·중 양국 간의 경제·무역관계와 함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중국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필자의 눈에 비친 왕이의 언행에서는 양국 간의 선린우호 보다는 지난날 종주국(宗主國)을 자처했던 명(明)·청(淸)의 사신(使臣)이 조선(朝鮮)을 방문했을 때의 거드름과 위압감이 느껴졌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에는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렇다치고, “대한민국은 독립 국가이다.”라는 말이 왜 중국외교부장 입에서 나와야 할까?

근래에 어떤 국가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부인한 적이 있지 않는 상황에서, 왕이의 발언은 우리에게 ‘미국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말을 듣지 않으면 관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메시지의 외교적 표현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우리 스스로가 아닌 인접 강대국가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또 다른 섬뜩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체결한 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서 일본이 요구한 첫 번째 내용이 “청은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가임을 확인한다.”였던 것이다.

그 후 우리나라의 운명은 을사늑약을 거쳐 한일병합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추(秋)·윤(尹)싸움에 지쳐가고 있는 상황에서 왕이가 남기고 간 흔적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대륙의 추위를 실감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