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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이런 본능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이론이 있지만 과학자 대다수는 그것이 생존에 필요한 것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지 않으면 날이 추워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는 비둘기를 먹습니다. 길을 지나가 보면 하얗게 생긴 뿔 모양의 비둘기 양식장이 있습니다. 이 속에서 비둘기를 키워서 자라게 되면 판다고 합니다. 비둘기는 밖에 나가서 먹이를 먹고 돌아다니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비둘기의 귀소성을 이용한 양식법입니다.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전쟁할 때였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10만 군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가을 달밤에 자기 군사들이 퉁소로 구슬픈 초나라의 가락을 불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퉁소 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몇 년 전신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스콘신주 그린 베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푸치’라는 이름의 앵무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고를 당한 그 새는 야생동물협회의 보호로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아무도 그 새를 찾는 사람이 없자, 그린 베이에 사는 ‘수 글리슨’이라는 여성이 그 새를 기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녀는 푸치를 엄청나게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은 새가 그녀의 어깨 위로 날아오더니 부리를 그녀의 귓가에 대고 “그린 베이 오네이다 거리 남쪽 1500번지”라고 속삭였습니다. 글리슨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즉시 그 주소를 확인하여 그곳에 79세의 존 스트루반츠라는 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님, 혹시 댁에 앵무새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전에는 있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잃어버렸습니다.” 글리슨이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노인은 자기 앵무새를 보자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정도니, 푸치는 정말로 비상한 앵무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 길에서 만나는 그 중간 기착지들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최종 기착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최종 주소지를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 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처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였습니다.
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국민환경방송 kmetv8114@naver.com
2026.10.08(목) 0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