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조선 8대 명당 "말명당 광산김씨 김극뉴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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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조선 8대 명당 "말명당 광산김씨 김극뉴 묘"
  • 입력 : 2022. 04.19(화) 13:30
  • 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기자
말명당 광산김씨 김극뉴의 묘<사진=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제공>
[국민환경방송 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기자] 김극뉴 묘역은 전라남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 36에 있다.

조선시대의 무덤으로 2019년 1월 30일 순창군의 향토문화유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김극뉴 묘역에는 김극뉴의 묘 바로 위쪽은 부인 함양박씨의 묘, 그 위에 장인인 함양박씨 박이 부부의 묘를 안장하였다.

아래쪽 묘원에는 아들과 증손, 맨 아래에는 딸과 사위인 동래정씨 정광좌의 합장묘가 차례로 조성되어 있다. 이 묘역은 일찍부터 풍수가들에 의해 조선시대 8대 명당중 하나인 “순창 말명당”으로 일컬어 왔다.

이 묘역을 통해 조선시대 전기의 윤회봉사와 균분상속의 일면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학술적인 가치도 높다고 판단한다.

김극뉴는 조선전기 성종대의 문신으로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좌의정을 지낸 국광의 장남이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가 좌의정 시절 8개월 간 혼자 의정부를 맡았는데 이점을 부끄럽게 여겨 아들이 태어나자 “너라도 자라서는 이런 부끄러움을 꼭 이겨내라”는 뜻에서 이름을 극뉴(克忸)라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선생의 아버지가 좌의정을 한 것은 성종대인 1570년대로 이 때 선생은 이미 30세가 넘었기에 앞뒤가 맞지 않다.

아마 초명은 다른 이름이었다가 이 이름으로 개명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극뉴는 기호학파로서 예학을 집대성하여 예로서 임란이후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 잡으려 했던 유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사계 김장생에게는 4대조가 되고, 부자기간에 함께 배향된 아들 신독재 김집에게는 5대조가 되는 분이다.

광산김씨가 조선조에서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이 사후에 해동 18현에 추앙되어 한 가문에서 2명이나 문묘에 배향되고, 문과 265명, 정승 5명, 양관 대제학 7명, 공신9명, 청백리5명, 왕비1명(숙종비 인경왕후)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신, 현관을 배출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행정. 사법고시에 다수가 합격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가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사계 김장생 선생의 자손이라면 맞선도 보지 않고 딸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문가문으로 인정받는 것은 이 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이 묘가 ‘말명당’으로 조선의 8대 명당에서도 그 이름을 가장 앞자리에 올린만큼 천하명당이기 때문에 그 발복에 의하여 선생의 현손인 사계선생을 시작으로 대제학7명, 왕비1명을 모두 그의 후손에서 배출하여 광산김씨의 영광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묘에 전해 오는 풍수설화에 의하면 원래 선생이 묻힌 자리는 그의 장인인 함양박씨 박 감찰의 신후지지였다고 한다. 선생의 장인은 삼형제로 모두 풍수지리에 능하였는데,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죽으면 묻힐 신후지지를 잡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형인 박 감찰은 이곳 순창의 ‘말명당’을, 둘째는 임실 갈담의 ‘잉어명당’을, 세째는 임실가실 마을 앞의 ‘금계포란형’을 잡았다고 한다.
김극뉴의 아들.증손 및 딸과 사위의 묘<사진=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제공>

그런데 박 감찰에게는 외동딸만 있었고 아들은 없었다. 자신의 제사를 받들어줄 아들이 없었으므로 사위가 좋은 자리에 들어가 외손이 번창하면 자신의 제사는 받들어줄 것이라 믿고 사위인 선생에게 자신의 신후지지를 양보하고, 자신은 그 뒤의 최고 높은 입수두 부분에 묻혔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는 박 감찰이 사위에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가 아주 좋은 자리임을 안 딸이 꾀를 내어 채갔다는 말이다.

박 감찰이 죽어 이 자리에 묻으려고 묘를 쓰기 전날 광중을 파 놓았는데 그의 딸이 이날 밤 광중에 물을 가득 부어 물이 나오는 흉지처럼 꾸몄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금의 자리 뒤로 올렸다고 한다.

아무튼 이 자리는 외손 발복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영향으로 선생의 후손들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전라북도 순창군 임계면 마흘리에 있는 재실인 영사재에서 매년 음력 10월 7일 제사를 올린다.
전라북도 순창군 임계면 마흘리에 있는 재실인 영사재 전경 <사진=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제공>

그래서 오늘날에도 광산김씨 시제를 지낼 때마다 자신의 장인이었던 함양박씨 박이에게 먼저 감사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반면에 함양박씨 문중에서는 이렇게 좋은 자리를 그의 문중에서 썼다면 광산김씨가 누린 영광을 자신의 문중에서 누렸을 텐데 하면서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기자 kmetv8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