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빗속에 물든 추억
김근식 보도국장 kmetv8114@naver.com
2026년 11월 01일(일) 17:57
[국민환경방송 김근식 보도국장] 그저께만 해도 가을이 이제 막 문턱을 넘어서는 듯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산자락에는 초록빛 사이로 노란색과 붉은색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계절의 시간은 참으로 빠르다. 며칠 사이 산은 온통 붉고 노란빛으로 물들었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잎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하나둘 땅으로 내려앉았다.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하다.

오늘은 가을비가 내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굽이진 도로 가장자리에는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빗방울이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면 멀리 보이는 산과 나무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잠시 차를 천천히 몰며 생각에 잠긴다.

나뭇잎은 떨어지면서도 아름답다. 한때는 푸른 생명으로 가지를 지켰지만,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신을 내려놓는다. 마치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땅으로 돌아간다.

문득 우리의 인생도 저 나뭇잎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았다. 더 많이 이루고 싶었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함께 웃고 이야기하던 시간, 가족과 나누었던 따뜻한 밥 한 끼, 가까운 사람의 안부 한마디가 가장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을비는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조용히 깨운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풍경을 만나면 잠시 멈추고,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면 먼저 안부를 전하고, 오늘 주어진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온다. 떨어진 낙엽도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우듯, 지나간 시간 역시 우리 삶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오늘도 가을비는 말없이 내리고 있다. 붉게 물든 나무들은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길 위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계절의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저께는 가을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끝자락에 와 있다. 참으로 빠른 것이 계절이고, 그보다 더 빠른 것이 세월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고마웠다, 가을아. 네가 물들여 놓은 이 길을 오래도록 기억하마.
김근식 보도국장 kmetv8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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