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한국 사회복지의 뿌리 목포 공생원

- 공생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정신이다.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kmetv8114@naver.com
2022년 03월 07일(월) 16:21
▲목포 공생원 전경<사진=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제공>
[국민환경방송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한국 사회복지의 뿌리 공생원의 역사는 목포시 대반동 외진 어촌 마을에서 시작됐다.

목포 공생원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에 전남 함평군 대동면 산골에서 태어난 윤치호는 12살에 YMCA 야학부 목공과를 다니면서 예수님의 삶에 감동을 받아 “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나사렛 목수가 되고 싶다”고 눈물로 기도드렸다.

그로부터 7년 후 기도 응답받아 목포 호남동에 나사렛목공소를 세웠다.

19살의 청년 전도사 윤치호는 어느 날 길을 가던 중에 다리 밑에서 굶주림에 떨고 있는 고아 7명을 발견하고 가엽게 여겨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이 살지 않는 목포시 대반동 유달산 자락에 터를 잡게 되는데 이것이 공생원의 시작이었다.

7명의 고아로 시작된 공생원은 원아 20명, 30명, 100명으로 늘어나면서 먹이고 입히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윤 전도사는 아이들과 밭을 일구는 등 자력갱생에 힘쓰는 한편 다른 전도사들의 도움을 받아 교육에도 더욱 힘쓰게 된다.

다만 음악 수업만은 직접 가르칠 수 없어 일본인 여성으로 목포 정명여고 재직 중이던 다우치 치즈코(한국명: 윤학자)에게 음악수업을 부탁하자 그녀는 아이들의 음악수업을 맡으며 공생원에 운명적인 첫발을 딛게 된다.
▲목포공생원의 설립자 윤치호와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부부의 가족사진<사진=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제공>

이후 함께 아이들을 돌보면서 윤치호와의 사랑을 싹트게 되어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은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7년 후에 해방이 되고 1950년 6, 25 전쟁 중에 윤치호 원장은 500여 명에 달하는 아동 식량 지원을 요청하러 전남도청에 갔던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윤학자는 행방불명된 남편을 기다리며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홀로 17년 동안 3,000여 명의 고아를 길러내면서 공생원을 지켜냈다. 이러한 헌신적인 일본 여인에게 한국정부에서는‘문화훈장’을 일본 정부에서는 ‘남수포장’을 수여하고, 경향신문은 “국민들이 주는 희망의 상 어머니의 탑”을 세워 평생의 공적을 기려 한국고아의 어머니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성경 말씀을 몸소 실천해 왔던 윤학자 여사는 56회 생일을 맞는 그 날 공생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 전국에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몰려들었고 최초의 ‘시민의 장’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그녀의 삶은 길지 않았지만, 감동 자체였다. 역사가 그녀를 크게 기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슈바이처 박사처럼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아낌없이 몸을 불살랐던 시대의 선각자셨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시작하면서 사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이러한 물결들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 변화의 큰 회오리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아들 윤기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공생원을 일으켰으며 손녀인 ‘다우치 미도리’에 이어 외손녀인 ‘정애라’ 3대에 걸쳐 유지를 받들어 오고 있다. 윤학자 공생 재단은 공생복지재단과 재주공생, 도쿄사무소까지로 개설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경향신문은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 어머니의 탑"을 세워 평생의 공적을 기려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존경과 추앙을 받고있다. <사진=특별취재 본부장 윤은상 제공>

국제 사회 사업가인 윤기는 일본 제일동포의 안식처인 고향의 집을 사카이, 오사카, 고배, 교토, 도쿄에 세우고 한일 양국의 힘을 모아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청원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윤치호와 윤학자, 윤학자와 어린이들, 공생원과 목포시민 그리고 한국과 일본 나아가 세계 모든 나라가 손잡고 더불어 나가야 할 공생은 공생복지의 출발이요 이념이며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1928년의 시작된 조그마한 기적이 공생복지재단이라는 커다란 물줄기가 된 것은 바로 한국사회복지의 선구자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사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로이 다가올 100년의 감동과 비전을 품고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을 섬기는 공생원이 될 것이다.

특별취재본부장 윤은상 기자 kmetv8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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